2002.03
2002.03.10
어제, B 감독과 통화한 후 <하나>를 영화화 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녀가 본명선언을 “콜레라”라고 표현한 것은 사실 충격이었다… 본명선언을 하고 이지메 당해서 너무나도 많은 아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듣는 것이었다. <하나>에서 일본 고등학교로 진학하는 영치가 장고 좀 배웠다고 일본 학교에 가서도 본명으로 당당하게 살아가겠다고 말한다는 설정이 얼마나 어설프고 치기 어리게 느껴지던지… 부끄러웠다. 한국 사람의 교만하고 삐뚤어진 국수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음이 뼈저리게 깨달아졌다.
우리는 아무 것도 그들을 도와 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 영화를 만듦으로 인해서, 그 결과를 통해서 조선학교 아이들이 한국에 올 수 있게 될 지도 모른다는 우리의 생각은 너무나도 나이브한 발상일지도 모른다. <입국금지>에서 인터뷰했다는 이유로 더 이상 조선학교의 교단에 설 수 없게 되었다는 음악 선생님, 그리고 촬영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직위해제 당했었던 교장 선생님… 그들의 집단주의 문화는, 축구공을 다른 사람에게 패스해서 슛이 나오지 않는… 그런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결정과 발언의 자유보다 조직이 우선하는 일종의 폭력적인 면도 있다. 우리는 좋게 보이는 피상적인 모습의 그 밑부분까지 꿰뚫어 볼 수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어쨌든 마음이 정말 무거워졌다. 내가 보안법 위반으로 어려움에 처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4배는 더 걱정이 되었다. 만일 내가 이 영화를 만듦으로 인해서 어떤 선생님의 꿈이, 자신의 평생을 조선학교에서 헌신하려던 그 꿈이 꺾이게 되면 어떻게 하나… 나는 그 선생님의 얼굴을 다시는 보지 못 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 선생님이 나를 만나고 싶어하지 않을지도 모르고, 내가 연락하지 않는 편이 그를 혹은 그녀를 돕는 것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가야 하는가? 카메라를 들고…
우리가, 내가 이 영화를 가지고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그런 불순물적인 요소를 깨끗하게 제하여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겸손한, 부끄러워하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 나라가 그들에게 잘못한 역사를 우리가 품고, 마치 중보자가 죄를 품듯이, 그들에게 가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도 관계에 관한 이야기여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그들에게로 다가가 그들을 짝사랑하는 이야기… (더 이상 그들이 한국에게 충성 맹세라도 하며 한국을 짝사랑하라고 했던 그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더 이상 우리와 그들이 아니라 함께 우리가 되는 이야기. 그것은 어떤 스토리일까?
2002.03 - 1
LKH 의 어록
"땅딸보와 뚱땡이로 매몰되고 있다."
(OOO 선생님에 관해서)
"리상만 하염없이 높고 있다."
(OOO 선생님이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
"사색과 모색의 벽에 부딪히고 있다."
(막내 동생 - 중급부까지 조선학교 나오고 호주 유학 갔다 온 - 이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다 하여 아시아나에 apply한 것이었는데 서류심사에서 조선학교를 나왔다 하여 떨어졌다고 한다. 원래 대한항공에는 붙고 있었는데 KAL은 안전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아시아나에 다시 apply 한 것이었는데 그냥 대한항공에서 일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너무 낙심하며 많이 울어서 그 모습을 보면서 정말 마음이 아팠었다고 한다. 그 막내동생이 이제는 진로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
2002.03 - 2
'학교에서 밖에서는 아무 쓸모 없는 우리말 우리 글을 열심히 배우고 있다!'
라는 교무주임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너무 마음이 아팠었다.
조국의 문을 닫고 있었던 것이 우리들 무지와 편견.
아이들이 원빈을 너무 좋아해서 원빈의 말투를 흉내내고 구수한 입말(구어체)을 구사하게 돼서
"성과입니다. 이것은!" (LKH선생님)
졸업식 때 아이들이 교장선생님으로부터 졸업증서를 받을 때 이지상씨가 작곡한 '아이들아, 이것은 우리 학교란다'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들으면서 정말 눈물이 나왔다.
예술로써 총련 재일동포들과 한국을 잇는 노래.
길이 되고 싶다.
이 영화를 통해서
한국 사람들이 조선학교에 가게 되고
조선학교 아이들이 마음껏
한국에 오게 할 수 있는.....
(제도를 고발하고 힘들고 불쌍하게 살아가는 재일동포들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조선학교 아이들의 얼굴을 보여주고 싶다.
그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여주고 싶고,
그 아이들이 하는 우리말을 들려주고 싶다.
우리의 아이들...
남과 북을 이을 아이들
남과 북에 선을 긋지 않고 사는 아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