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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은 일본에 사는 북한국적의 사람들이라고 오해 되어 왔다. 조총련계 동포들 중 많은 이들이 ‘조선’이라는 국적을 가지고 있는데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 지성인이라는 이들이나 기자들마저도 이 ‘조선’이라는 국적이 ‘북조선’의 그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하지만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보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던 시기, 수많은 조선 사람들이 일본으로 강제연행 되어 끌려 갔었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후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일본에 남아있던 우리 동포들은 ‘일본인’이란 법적자격을 박탈당하고 일방적으로 ‘조선’이라는 국적을 부여 받았는데, 이는 실제적인 차원에서의 국적이라기보다는 출신지를 표시하는 의미이다. 거의 100년 전 이 지구상에서 사라진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적을 지키고 있는 재일동포들은 엄밀히 말하자면 무국적자들인 것이다.

 

1965년 한일협정 발효로써 재일동포들은 대한민국의 여권을 가지는 것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고 일본 정부가 요구하는 자격에 부합한다면 일본인으로 귀화하여 일본의 여권을 가지는 것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만 명에 달하는 재일동포들은 온갖 불편과 차별을 이겨내며 조선적을 지켜 나가고 있다. 그들이 반세기가 넘도록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에서 피상적으로 생각하듯이 북한체제에 대한 맹목적 충성 때문은 아니다. 한반도에 있는 두 나라 중 어느 한 쪽을 선택함으로써 다른 하나를 부정할 수 없다는 신념, 하나된 조국의 국적을 가지게 될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강한 통일에 대한 염원이 이들에게 반세기를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 그리고 조선학교에서 일본 정부의 탄압과 재정의 어려움과 싸워 오면서도 꿋꿋이 민족교육을 지켜 왔던 것이 또 하나의 큰 구심점이 되었다.

 

일본에서의 우리 동포들의 민족교육에 대해 공부하면서 지금의 조선학교의 모체가 해방 직후에 일본 전역에서 자체적으로 일어났던 국어강습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쟁 직후에 아무 것도 갖추어진 것은 없었지만 조국을 되찾은 기쁨으로 가득 차 빼앗겼던 우리 말과 글을 아이들에게 배워 주고 일본에 살고 있어도 조선사람이라는 긍지를 심어 주었던 국어강습소의 정신이 조선학교에서 반세기가 넘도록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조선학교의 교육의 역사는 남과 북의 문제를 떠나 일본에 사는 우리 동포들이 어떻게 대를 이어 타향에서 우리 민족의 말과 글, 정신과 긍지를 지켜 왔느냐에 대한 자랑스러운 기록이다.

 

사람을 만나서 사귀게 될 때 처음에는 그 사람의 외모가 눈에 뜨인다. 키가 작다든지, 안경을 쓰고 있다든지, 얼굴이 까맣다든지, 이빨이 덧니라든지… 하지만 그 사람과 친구가 되어 더 알아가게 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들, 그 사람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 그 사람의 꿈 등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된다. 조선학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태까지 조선학교에 대해 다루어진 방송이나 기사들을 보면 조선학교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보이는 것들? 학생들의 치마 저고리 교복이라든지, 교실마다 걸려 있는 초상화 같은 것에 시선이 집중되는, 피상적인 차원의 이해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극장용 다큐멘터리의 선례가 극히 적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라고 하면 르포르타주 성격의 방송용 다큐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나는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공부하고 제작해 스크린에 올릴 만한 가치가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한국사람들이 보더라도, 재일동포들이 보더라도, 한민족이 아닌 관객들이 보더라도 공감할 수 있을 만큼의 완성도가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조선학교의 피상적인 겉 모습을 넘어서서 조선학교에 다니고 있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의 꿈을 영화에 담고 싶고, 그 아이들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들이 어떠한 대가를 치루면서 학교를 지켜오고 민족을 지켜왔는지 그 생생한 목소리를 기록하고 싶다.

 

지리적 통일에 앞서 공통적인 언어, 문화, 역사의 민족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과 해외에 살고 있는 동포들의 마음이 하나로 엮어졌던 것을 경험했던 것처럼 스포츠나 예술에는 국경과 이념의 장벽을 넘어 사람과 사람의 마음을 잇는 힘이 있다고 믿는다. 이제 본격적으로 제작에 들어가려고 하는 이 영화가 한국과 조선적 재일동포들을 잇는 다리가 되고 자랑스럽게 우리 민족학교를 일본 땅에서 지켜 오신 분들에게 작은 선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