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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 메이킹이란 영화제에 가는 것도 아니고 인터뷰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필름 메이킹이란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는 것이고, 비 속에서 촬영하는 것이고, 무거운 조명기를 드는 것이다."
(크지쉬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자서전에서)
굳이 우리 시대의 마지막 예지자였던 키에슬로프스키의 혜안을 빌리지 않더라도 한 영화감독에게 영화제란 것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는 점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여전히 성역처럼 느껴지는 깐느영화제에 올해 네편의 한국영화가 한꺼번에 초청된 것은 가슴 설레이는 일이다. 홍상수의 <강원도의 힘>, 이광모의 <아름다운 시절>, 허진호의 <8월의 크리스마스>, 그리고 가장 낯선 여성감독 ECHO FILM은 10분짜리 흑백영화 <스케이트>로 한국 단편영화사상 처음으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신인 감독만으로 구성된 이 '깐느 외교사절단' 속에서 ECHO FILM은 "키에슬로프스키에 관한 키에슬로프스키"의 서문에 등장하는 바로 위의 첫 구절 때문에 키에슬로프스키를 열광적으로 좋아하게 되었다고 고백하는 순수한 영화광 출신이기도 하다. 실제로 무거운 조명기를 일년 반이 넘도록 들어본 그녀로서는 키에슬로프스키가 예술과 노동이 라는 동전의 양면으로 파악한 영화 만들기를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다 .동시에 그녀는 한편의 단편영화로 갑자기 쇄도하는 인터뷰와 깐느 집행부와의 분주한 팩스 오가기로 바쁜 영화감독의 또 다른 일상을 치루고 있기도 하다. 올해 깐느영화제에서 <스케이트>와 경쟁할 단편영화는 열 세편으로 알려져 있다. 이 깐느에서의 선정도 ECHO FILM 감독 스스로 일구어낸 결실이다. 그녀는 서울 단편영화제가 끝난 후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영화제에 편지와 비디오 테이프를 보냈고, 그것을 받은 몇개의 영화제 측에서 초청의사를 밝혀온것이다.
ECHO FILM감독은 1972년 생으로 올해 스물 일곱이다. 중학생 때부터 장래의 진로를 영화감독으로 못 박은 이 단편영화 감독은 확실히 남다른 데가 있다. 우선 영화광 출심의 동세대 '어린' 감독들과 비교할 때 독실한 크리스찬의 정신을 실천하고자 하는 그녀는 차분하고 고전적인 영화관과 인생관의 소유자이다.작년의 제 3회 서울 단편영화제에 참가했던 관객들이라면 충분히 느낄 수있었을 것이다. <스케이트>는 이 영화제에서 예술 공헌상을 수상했으며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홍콩 감독 왕가위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왕가위 감독은 공식적인 수상무대에서 '마이 페이버리트 필름'이란 말을 강조했고, 심사 과정에서 "마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잘 만든 아시아 영화를 보는 듯하다. 내가도저히 만들 수 없는 영화다."라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