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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그 날 이후에도 이 지구상에는 유일한 분단의 국가가 남아 있다. 아직도 쉽게 오갈 수 없는 같으면서도 다른 나라, 바로 코리아이다. 동북아시아의 끝자락에 위치한 이 작은 나라는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아직도 허물지 못한 채 남과 북으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그 나라의 바다를 건너면 유일하게 남과 북의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계, 일본 땅이 있다.


일본에 거주하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일본의 제국주의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노역과 군역을 위해 강제 이주 당한 이들의 후손들이다. 일본의 한국 이민자들은 한국 국적, 조선 국적 그리고 귀화하여 일본 국적을 가진 이들로 나뉘어 있다. 그러나 조선이라는 나라는 1910년에 이미 지구상에서 없어졌음에도 조선 국적을 가진 이들은 분단 전의 조선을 고향이라 여기며 그 국적을 지키고 있다. 물론 그들은 남한이 아닌 북한의 소속으로 총련계라 불리기도 한다.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한국인으로, 조선인으로 그리고 일본인으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 국적과 이념은 다를 지라도 그들은 통일된 조국의 role model이 되어 차별과 불평등의 사회적 현실 속에서 또 하나의 나라를 만들어 가고 있다. 그들의 사회 속에는 지난 50년간 온갖 핍박과 경제적인 고통을 이겨내며 지켜온 '민족학교'가 있다. 본명과 통명의 선택을 강요받는 한인들에게 이 민족학교는 타인에게서 강요된 열등감을 극복하는 장소요, 정체성을 회복하는 치유의 공간이며 자신의 뿌리를 찾는 시간으로의 여행이다. 그리고 이 곳은 낯설은 언어로도 호쾌한 웃음이 들리는 역동적인 곳이다.


일본학교의 진학을 통해 더 나은 경제적인 보장과 소수 민족의 차별을 벗어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자식을 민족학교에 보낸다. 그 부모의 부모들이 입었던 하얀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고 오로지 한국어로만 말하고 들어야 하는 그곳에서 한인들은 웃음을 찾고 내일을 건다. 그래서 일본 어디에도 없을 낡고 초라한 민족학교의 건물에선 삐그덕 거리는 불협화음조차 최고의 하모니로 들리는 오케스트라 같은 힘과 열정이 느껴진다.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2시간을 가서 후쿠시마 현 고리야마 역에 내리면 후쿠시마조선초중급학교가 나온다. 정문이나 담장은 없고 주렁주렁 열매 달린 나무들이 그 학교의 교정을 대신하고 있다. 전교생의 70%가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는 30년이 넘은 조선학교다. 매년 3월(?)이 되면 이곳에선 눈물의 입학식이 치러진다. 이제 갓 6살이 넘은 아이들이 부모의 곁을 떠나 기숙사에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부모도 울고, 자식도 울고...도대체 세계 어느 곳의 초등학교 입학식이 이리 서글프단 말인가.
자기가 누구인지 뿌리를 알게 하기 위해선 민족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은 언젠가 자식들이 크면 부모의 생각과 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마치 그들의 부모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기숙사의 복도를 순찰하는 선생님을 발견하면 아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달려와 안긴다. 선생님이 부모가 되는 독특한 사제의 정이 온 교내에 향기가 된다. 선생님들 역시 초급학교부터 조선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십 수년을 기숙사 생활을 했슴으로 누구보다 아이들이 마음을 잘 안다. 초급학교 졸업식이 입학식만큼 눈물바다를 이루는 것도 바로 선생님들의 헌신과 사랑 때문이다. 여느 학교에서는 볼 수 없는 감동이 있는 것이다.


오늘은 저녁 식사 후 체육관에서 운동시합이 있다. 조별로 치러지는 농구시합.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신이 나게 뛰어 다닌다. 그런데 무지하게 부지런히 움직이고 수 없이 패스가 오고 가는데도 슛이 없다. 자기가 해도 될 슛을 자꾸 동무들에게 패스하며 양보하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우승도 개인적인 성적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운동 자체를 즐기며 학교에서 배운 공동체 의식과 협동심만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일은 성적표를 나누어주는 날에도 볼 수 있다. 성적표를 받음과 동시에 학생들은 자신의 석차보다는 우리 반의 석차에 먼저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성적이 안 좋은 동무를 위해 조를 짜고 시간표를 세워서 함께 공부하여 함께 성적을 올리려고 애쓴다.


학생들의 이러한 성향은 분명 민족학교 선생님들의 특별한 교육 이념 때문이다. 본국에선 아직도 남과 북의 사상과 제도가 대립하고 통일의 의미도 퇴색되어 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나오는데 이곳의 선생님들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개인적인 숙원 사업으로까지 여긴다. 남과 북의 정치를 초월한 교육을 하고 싶다는 선생님들. 어린 자식을 기숙사까지 보내서 민족을 찾고자 하는 부모들. 그리고 일본 땅에서 차별과 냉대 속에 사는 소수민족이 아니라 통일의 역군이 되겠다는 아이들.


그래서 일본의 한인들에겐 꿈이 있다. 분단된 조국이 하나가 되는 꿈. 일본 사회 속에서 당당한 한국인이 되어 개인적인 행복만이 아닌 다수의 행복을 추구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꿈 말이다. 오늘도 민족학교의 기숙사엔 해가 떠오른다. 그들의 가슴만큼이나 뜨겁고 정열적인 태양이 오늘도 높이 높이 솟았다.